전진상교육관

 

 

 
작성일 : 21-04-30 17:35
[소식] <휴심정> 신선미의 자기인식 노트 - 치유는 선한 본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글쓴이 : 전진상
조회 : 6,019  

개나리·진달래·벚꽃이 화사하게 피고, 얼었던 냇물이 시원스레 흐르고 있다. 여전히 코로나19와의 싸움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지난한 겨울을 난 가지에 새싹이 돋아나고 형형색색 꽃을 피우는 자연의 힘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런 생명의 힘과 질서에 감사할 따름이다.

모든 생명체는 살아 숨 쉬고 성장하며 생명의 결실을 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본성이 가진 고유한 힘과 질서에 상처를 내면 파괴적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코로나19와 같은 온갖 변형된 바이러스는, 인간이 자연에 준 상처가 부메랑이 되어 인간의 삶을 제한하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파괴적 힘이 된 것이다.

심리치료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받은 상처도 이와 유사하다. 사람은 양육 과정에서 안전하고 따듯하며 애정 어린 돌봄과 한 인격체로서의 존중과 인정이 있어야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엄청난 힘과 자원을 건강하게 사용하며 살 수 있다. 자신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이웃과 더불어 사랑하고 일하며 인생이란 축복을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

반면 어린아이가 신체적·심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폭력, 거부와 방치, 무시와 억압을 받으면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본성의 힘을 건강하게 사용하지 못한다. 아이의 인격은 손상되고 왜곡되어 성장하게 되고, 그 힘은 파괴적이 된다. 내면에 억압되고 치유되지 못한 분노는 자기 자신을 해치기도 하고, 타인과 사회를 향한 적대적 행동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 중년 남성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는 친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전혀 슬프지 않았으며 오히려 삶의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로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윤리적으로 좋고 나쁘다고 판단할 수 없다. 감정은 마음을 알리는 하나의 신호이기에 나는 “당신이 그렇게 느낀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반응했다. 그렇게 느낄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됐는지 그는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다. 분노 조절이 어려운 아버지는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그걸로 때렸다. 어머니가 폭력을 당하는 것도 수없이 보았다. 그런 아버지가 외도로 집을 나갔다가 온갖 방황을 끝내고 노년이 되어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지만 불쌍한 어머니를 보며 참았고, 아버지는 몇년간의 병고 끝에 돌아가셨다.

아버지 대신 가장 노릇을 해온 그는 만성 두통과 우울감이 심했고, 이따금 다양한 폭력 충동에 시달렸다. 그가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미움을 폭우처럼 쏟아내는 동안 내가 한 것은 그냥 듣는 것뿐이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큰 고통에 감히 무어라 표현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동안 그렇게 자신의 고통을 토해내더니 “아버지도 상처가 많고 불쌍한 분”이라며 오열했다. 나도 눈물이 났다. 그는 상처로 인한 분노와 미움이 아닌, 자신 안에 있는 본래의 선한 마음과 다시 연결되면서 서서히 평화를 되찾아갔다.

상담을 하면서 심리상담가인 나도 치유를 받을 때가 있다. 사람이 자신이 받은 그 어떤 상처에도 굴하지 않고 그 고통을 넘어 자기 안에 내재된 참되고 선한 본성을 회복하는 순간을 볼 때다. 그럴 때야말로 인간이 존엄한 존재이며 만물의 영장임을 느낀다. 결국 치유는 자기 안에 내재된 참되고 선한 본성을 되찾는 것이며, 상처로 손상된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신선미 가톨릭전진상영성심리상담소장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well/well_friend/992052.html#csidxdf83ab835c0ad2ea2a7b5d58f2b3ba9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well/well_friend/992052.html#csidxf886c949e4ad29bbfd8704b0a7eba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