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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상교육관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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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전진상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1,032회   작성일Date 05-07-26 10:39

    본문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민가협은 명동성당에서 한여름에 '하루감옥체험'을 공개적으로 실시했다.  인권문제에 관심있는 인사들이 양심수로 0.75평의 감옥에 들어가고 구속된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교도관이 되어.  고도소 안의 수형생활을 재현했다.  개인적으로는 양심수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지만, 더 크게는 양심수가 엄존하는 오늘의 인권현실을 고발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1999년에는 이 행사가 '1999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치러졌다.  다양한 프로그램 가운데는 '양심수를 위한 시민가요제'도 있었다.

      해마다 좀더 큰 규모로 이런 행사가 치러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이도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그 이름이 민가협으로 바뀌었지만.  1974년 9월경 창립될 무렵의 구속자가족협의회는 지금과 비교해서 실로 천양의 차이가 있었다.  긴급조치 1.4호가 선포되면서 1천여명의 학생.  지식인들이 구속되지 그 가족들은 몹시 당황했고 어쩔 줄 몰라했다.  면회는 안되지만 영치금. 책. 옷을 넣어주기 위해 서대문구치소로 가족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어머니들은 가뜩이나 겁에 질려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비싼 돈 들여서 가르쳤더니 부모한테 보답한다는 것이 고작 이것이냐"면서 자식들을 원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동안 가족들이 정보과 형사를 비롯해 주변의 싸늘한 시선을 너무도 진하게 받은 까닭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마치 자신들이 죄수라도 된 양 주눅들어 있었다.
      그해 8월말쯤 되었을까.  나는 명동성당에서 박규형 목사의 부인 조정하 여사, 서강대 김윤학생의 어머니 김한림 여사, 김지하의 어머니 정금성 여사, 그때 구속된 박형규 목사의 뒷바라지를 하던 손학규 등을 만나 구속자 가족들의 모임을 결성하고 운영하는 문제를 상의했다.  구속자 가운데는 지학순 주교의 비중이 가장 높았지만, 지학순 주교는 어머니는 물론 아내도 없었다.  동생 지학삼은 처음 당하는 일로 허겁지겁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다보니 박형규 목사의 부인 조정하 여사가 중심이 되고.  여기에 윤보선 전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 연세대생 김학민의 아버지 김윤식 등이 힘을 보태서 그해 9월쯤 구속자가족협의회가 탄생한 것이다.

      공덕귀 여사가 회장 김윤식이 부회장.  김한림 여사가 총무를 맡았다. 구속자 가족협의회를 결성하여 활동하는 데 큰 힘이 되어준 것은 개신교에서는 1974년 7월 중순에 시작한 목요기도회였고.  가톨릭에서는 전. 진. 상교육관의 아피(AFI. 국제가톨릭형제회) 선생님들은 긴급조치가 터지고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들어가자 내복과 침낭을 구입해 가족들로 하여금 감옥에 영치하게 하는가 하면.  영치금을 마련하는 일 등에 발벗고 나섰다. 또 가족들이 전.진.상 교육관에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장소를 개방했고.  지친 어머니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했으며.  크고 작은 문건을 만들어 배포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떤 때는 구속자 소식을 해외에 알리고 그 도피처를 마련하는 일도 서슴없이 했다.  가족들이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곳.  지친 마음과 육신이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거기였다. 그해 11월11일 구속자 가족 50여명이 단식기도회를 연곳도 전.진.상 교육관이였다. 어머니들이 단식을 끝낸 뒤 계성학교를 통해 종로로 진출해서 시위를 전개한 것도 당시로서는 특기할 만한 사건이였다.

      이렇게 결성된 구속자가족협의회는 실로 많은 일을 했다. 우선 구치소 마당에서 만나는 가족들을 목요기도회, 명동성당기도회 등에 동참하게 하여 그들이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켰고, 우리의 아들 딸들이야말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를 깨닫게 했다. 겁만 내던 가족들로 하여금 자식들의 행동이 옳았다는 신념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자식들을 나무라고 원망하는 자세에서 자식들을 격려하고 고무하는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그것은 감옥에 있는 자식들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었으며, 또한 용기가 되어 법정에서 더욱 당당할수 있게 했다.


    출처 :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 운동 30년의 역정에서"  발췌 <김정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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